스킵네비게이션





주변관광지

영남루

영남루
  • 영남루(보물제147호)는 고려 공민왕(1365년)때 부사 김주가 신라시대 때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영남사의 부속 누각에서 유래가 되어 전래해 오던 작고 초라한 누각을 철거한 후, 진주 촉석루의 제도를 취하여 개창하였는데 이 때부터 규모가 큰 독립된 누각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목조 건축물의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는데, 평면은 정면 5칸 측면 4간이고 2층 평면은 내외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침류각과 본 누가 사이를 달월 자형의 계단형 통로로 연결하여 건물의 배치와 구성에 특징을 배가 시켰는데, 웅장한 기풍으로 인해 당당하면서도 회화적인 아름다움의 진수를 보여 주고 있어 진주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명루로 있을 뿐만 아니라, 여행객들의 입에 흔히 오르내리는 관광명소이며, 특히 맑고 깨끗한 밀양강과 어울려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데 강물에 비친 영남루의 아름다운 야경은 최고의 경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 주소: 경남 밀양시 중앙로 324(내일동)
  • 전화: 055)359-5590(관리사무소), 359-5641(문화관광과)

표충사

표충사
  • 신라무열완 원년(654) 원효대사가 지금의 극락암 자리에 초암을 짓고 수도하는 어느날 아침 재약산 쪽을 바라보니 대밭 속에서 오색서운이 떠오르는 것은 보고 그 자리에 가람을 짓고 이름을 죽림사라 하였습니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년국사가 1,000여명의 대중을 맞아 불법을 중흥하여 동방 제일선찰이 되었으며, 1290년(충렬와16)천희국사가 선풍을 관장하니 일국의 명찰이라 일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 현종때(1839) 월파 천유화상이 임진화란을 맞아 승병을 일으켜 큰 공훈을 세운 서산, 사명, 기허 3대 선사를 모신 표충사를 이곳으로 이건 하면서 절 이름도 영정사에서 표충사라 명명한 절로 주위 산세가 뛰어난 곳이며, 특히 재약산의 사계에 따라 수리로 변화는 주위 풍광이 장관을 이루어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습니다.
  •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 전화: 055)352-1150(종무소), 359-5639(문화관광과)

얼음골

얼음골
  • 해발 1,189m의 천황산 북쪽 중턱 해발 600m지점의 얼음골 계곡은 삼복한더위에 얼음이 얼고 처서가 지날 무렵부터 얼음이 녹는 신비로운 이상기온 지대이다. 약 3,000평쯤 되는 이 돌밭에는 해마다 6월 중순부터 바위틈새에서 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더위가 심해질수록 얼음이 더욱 많아 지는 삼복더위가 한창일 때 그 절정에 이르고 반대로 가을철에 접어들면서부터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겨울철에는 바위틈에서 얼음 대신 더운 김이 올라오고 계곡을 흐르는 물도 얼지 않은 이상기온 지대이다.
  •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삼양리 185-1번지
  • 전화: 055)356-5640(얼음골관리사무소)

명례성지

명례성지(하남읍 명례안길44-3)
  • 영남 천주교 신자들의 영적 고향인 명례 성지는 밀양과 김해를 잇는 나루가 있던 낙동강 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이 언덕은 복자 신석복 마르코(1828~1866)가 출생한 곳이며, 영남지방의 네 번째 본당이자 경남 지역에서 가장 일찍 본당이 설립된 곳으로(1897년), 정규하, 강도영 신부와 함께 한국 땅에서 처음으로 서품된 사제이자(1896) 세 번째 방인 사제인 강성삼 신부(1866-1903)가 초대 본당신부로 사목하다가 돌아가신 곳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태풍으로 전파된 성전(1928)을 축소 복원한(1938) 것이다. 남녀석이 구분되어 있는 성전 내부(4,559㎡)의 목조 구조는 전국에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오래된 형태로 초기 한국천주교회의 전통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벽 쪽을 향한 제대와 그 위에 모신 십자가와 장미의 성모상에서 초기 신자들의 신앙과 명성을 느낄 수 있다. 2011년 2월에 경상남도는 이 건물이 가지고 있는 교회사, 문화사, 건축사적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여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526호로 지정하였다.
  •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명례안길 44-3

명례 낙주재

명례 낙주재
  • 낙주재(洛洲齋)는 낙주재(洛洲齋) 이번이 광해조 서궁(西宮)의 변에 항절하고 남하하여 은둔하던 집인데, 인조 5년(1627)에 인조가 손수 낙주재(洛洲齋)라 써서 하사하였다. 세월이 오래되어 무너졌으나 7세손 방렬(邦烈)이 여러 종원(宗員)과 합의하여 그 유지에 공의 별묘(別廟)와 함께 순조 30년(1830) 중건한 집이다. 낙주재공(洛洲齎公) 이번(1575~1627)은 효령대군(孝寜大君) 보(補)의 8세손이자 인목대비(仁穆大妃)의 가까운 인척이다. 광해 5년(1613)에 대북인(大北人)의 모변(謨變)으로 인목대비를 폐할 때 항절(抗節)하여 정청(庭請)에 불참하고 화를 피하여 남하하여 황폐한 들에 자취를 감추었다. 계해년(1623)에 인조가 개옥(改玉)하자 공을 찾아 홍문관(弘文館) 부제학(副提學)에 제수하였으나, 인조가 그가 사는 곳에 무슨 낙사(樂事)가 있기에 벼슬도 마다하고 사람조차 볼 수 없느냐 하고 선전관(宣傳官)에게 명하여 그 집을 그려오게 한 뒤에 낙주재(洛洲齎)라는 수필(手筆) 편액을 하사하고, 이어 원종공(原從功)에 녹훈(錄勳)하였으며, 또 ‘금지옥엽(金’枝玉葉)‘ 네 자와 금병(錦屛) 한 첩, 옥역(玉硯) 1좌 및 전토(田土)와 노비를 하사하였다 한다.
  •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